요즘 나는 운동을 다니는데, 운동후에는 공동샤워실을 이용한다.
오늘은 유달리 탈의실의 락커룸의 빈 공간에는 하하호호 웃으며 로션을 바르는 무수한 60-70대 분들로 가득했다. 걷기 힘들정도의 동선이었다. 샤워실로 들어선 순간, 온탕에서는 한껏 톤을 높여 대화하는 할머니, 샤워실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는 할머니, 때밀기 금지 구역인 샤워실에서 때미는 할머니까지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 빈 자리 발견후, 자리를 잡고 샤워를 했다. 약 2m 부근 좌측에 위치한 냉탕에서 물을 한바가지 떠 전신에 흠뻑 적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행위는 수차례 반복되었으며, 튀기는 물의 양 때문에 나도 함께 냉탕 샤워를 하는듯한 공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기에 샤워를 재빨리 마치고, 파우더룸으로 향했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때쯤, 왼쪽에 있는 할머니의 시선이 약 5초간 내몸의 위아래로 향했다.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겪어온 관음적시선들이 떠올라 불쾌했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몸매가 예뻐서 쳐다봤어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며 멋쩍게 웃으셨다.
그 순간, 거울에 나란히 비친 할머니의 축처진 피부, 주름, 흰머리와 나의 젊은 피부, 탱탱함, 긴머리 웨이브가 보였다.
100년전만 해도, 마을의 문제가 생기면 마을 내 가장 나이 든 어르신을 찾아가 지혜와 자문을 구했던 시절이 있었다. 늙은이를 최고의 지혜자로 존경하고 공경했다. 하지만 오늘날 늙음은 쓸모없고, 새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식에게 물어보기만 하는 등의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 만연하게 존재한다.
늙음은 ‘존경의 대상’에서 ‘귀찮은 대상’으로 몰락했다.
젊을 때는 낯선 지식을 배우기 쉽고, 낯선 곳과 낯선사람의 만남에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자주가는 가게, 쓰던 물건, 가치관 등 익숙함이 좋고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좋다. 우리가 노인을 ‘쓸모없는 대상’으로 인지하는데 한몫거든데는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그대로 고수하며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옳은 것’을 강요하는 태세일 수 있다.
우리는 늙지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20대 청춘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처럼.
그들도 한 때는 아이였고, 소녀였고, 청춘이었다.
철학자 강신주는 말했다.
“나이듦과 주름은 그 사람의 삶을 상징합니다. 더이상 나이들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늙는다는 건 삶의 무게와 깊이를 만들어 줍니다.”
늙음을 기피하기보다 20대는 70대의 삶의 지혜를 배우고, 70대는 20대의 삶을 이해하며 각자 나이에 맞게 삶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깊이가 더해진 늙음과 삶을 즐기는 젊음이 소통할 때 오늘보다 한 발짝 앞선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렇게 대답할 걸 그랬다.
“지금 그대로가 나이에 보기 좋으세요”